고기후학은 수십만 년 전부터 수백만 년 전까지의 지구 기후를 복원하는 학문으로, 기후위기의 과학적 이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퇴적층, 화석, 빙하 코어 등 지질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과거의 온도, 대기 조성, 해수면 변동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현재 기후 변화의 이례성과 속도를 입증하고, 미래의 기후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데 기여한다. 본문에서는 고기후학의 연구 방법, 주요 사례, 현대 기후 과학과의 연계를 다각적으로 살펴본다.

기후 과거를 밝히는 열쇠, 고기후학의 등장
기후위기를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온도 상승이나 빙하 융해와 같은 현상에만 집중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과연 자연적인 주기의 일부인지, 혹은 인류 활동에 의해 촉진된 예외적인 현상인지 판단하려면 수십만 년, 때로는 수백만 년 전의 기후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먼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고 분석하는 학문이 바로 고기후학이다. 고기후학은 지질학, 생물학, 화학, 기상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어 발전해 왔으며, 퇴적층에 남겨진 화학적 신호, 생물 화석의 분포, 빙하 코어 내의 대기 기체 농도 등을 활용해 지구의 기후 역사를 해독한다. 이러한 연구는 단지 과거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남극의 빙하 코어는 80만 년 이상의 기후 데이터를 제공하며, 화석 기록은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의 생물 다양성과 기후 상관관계를 추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최근의 고기후학 연구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증가한 온실가스 농도가 과거 어느 시점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음을 입증하며, 지금의 기후위기가 자연 주기를 벗어난 이례적 현상임을 경고한다.
암석과 화석, 그리고 기후의 단서들
고기후학의 핵심 도구는 지질학적 자료이다. 대표적인 예로 퇴적층은 지구 표면에서 시간에 따라 형성된 층으로, 각각의 층은 형성 당시의 기후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이 퇴적층에는 유기물, 탄산염, 화산재, 동식물 화석 등 다양한 구성 요소가 포함되며, 이를 통해 과거의 온도, 해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정밀하게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산소 동위원소(O-18과 O-16)의 비율 분석은 고해양 온도나 빙하 부피를 재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화석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고생물의 분포는 당시의 생태계와 기후 조건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열대성 식물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과거에 따뜻하고 습한 기후였음을 의미하며, 극지방에서 발견된 온대성 동물 화석은 해당 시기에 극지방 기온이 높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나무의 나이테, 산호의 성장 패턴, 동굴 석순의 층리 등도 연속적인 기후 기록을 제공하는 자연 기록계로 활용된다. 빙하 코어 분석은 대기 조성의 과거를 복원하는 데 탁월하다. 수십만 년 전의 공기 방울이 얼음에 포획되어 있어, 당시 대기의 이산화탄소, 메탄, 질소 농도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기 구성과 기온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고, 현재의 급변하는 기후 시스템이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고기후학적 자료는 서로 보완되며, 종합적인 지구 기후 모델링에 기여한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기후위기 대응 전략
고기후학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과학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 전략 수립의 핵심 자산이 된다. 예를 들어, PETM(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시기의 기후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급증이 해양 산성화와 대량 멸종을 어떻게 유발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며, 기후변화의 영향이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얼마나 깊은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또한 고기후학은 기후 민감도(climate sensitivity)에 대한 예측 정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기후 민감도란, 이산화탄소 농도 두 배 증가 시 지구 평균기온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고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은 현대 기후 모델보다 신뢰도 높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이는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나 재난 대비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고기후학은 인류가 기후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 시간의 경계를 확장해 주는 학문이다. 과거를 깊이 있게 이해할 때, 우리는 현재를 더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를 더 현명하게 설계할 수 있다. 암석과 화석은 말이 없지만, 그 속에는 수천만 년 동안 축적된 지구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그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